사설
대한민국 첫 유혈 민주화운동, 민주주의 근간 세우다 - 3·15의거 60주년
4·19혁명 도화선 된 3·15의거 / 장기집권야욕 국민 저항에 ‘무릎’ / 현대사 최초 민주·민족운동 60주년 / 역사성 재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추진
올해는 3·15의거가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창원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물꼬를 틔운 3·15의거 60주년을 맞아 3·15의거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며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3·15의거 배경과 시위 전개과정, 의의를 되짚어본다. △자유당 정권 장기집권 야욕으로 벌인 부정선거로 3·15의거 발생 =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초대 대통령부터 1960년 당시 3대째 대통령을 지내고 있었다. 그는 12년 동안 대통령을 했음에도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는 장기집권야욕을 노골화했다. 1960년 3월 15일 선거를 앞두고 준비과정에서부터 공권력을 동원해 노골적인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이에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첫 시위가 터졌다. 3월 15일 선거 당일, 자유당 정권은 사전투표, 3인조·9인조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런 부정행위 결과로 개표 과정에서 부통령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79%로 하향 조정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연한 부정행위를 목격한 마산시민들은 “협잡선거 물리쳐라”는 구호를